작성일 : 2022.04.06 14:00 작성자 : 최지연 (air24jychoi@gmail.com)
다시 한국항공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게 되었다.
작년 여름, 에어컨 앞에서 비행 에피소드를 들춰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보면, 여권이 만료되었고, 지인들이 선물한 선물 쿠폰들도 차례로 유효기간을 넘겨 버렸다.
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얀마 민주화운동은 답보 상태며, 코로나바이러스는 마지막 기세를 떨치고 있다. 만료된 여권 따위야 재발급하면 그만이고, 유효기간을 넘긴 쿠폰은 선물한 지인의 마음은 남았으니 그걸로 됐다. 하지만 전쟁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외면하기 어렵다. 매번 힘들 걸 알면서도 인터넷으로 그들을 찾게 된다. ‘아, 빨리 평화가 왔으면.’ ‘아, 이제 코로나가 종식되었으면’ 하면서 말이다.
대학 친구 중에 피를 보면 흥분된다는 친구가 있었다. 뒤늦게 적성(?)을 찾아 나선 친구의 현재 직업은 의사이다. 반대로 피만 보면 손이 떨리는 부류가 있다. 그게 바로 나다. 그래서 초창기엔 환자 승객을 만나면 힘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발리에서 인천으로 출발 전, 승객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사전 인포(info)에 의하면 그는 발리 여행 중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복합골절을 당한 중환자였다. 승객이 탑승하기 전 정비사 두 명이 좌석 6개를 눕히고 환자 승객이 누울 수 있는 Stretcher(스트레처)를 부착했다.
“주희 씨 존(Zone)에 스트레처 승객 탑승 예정인 줄 알고 계시죠?”
“예.”
“그래요? 그럼 승무원은 뭘 확인해야 하죠?”
“예. 객실승무원은 이, 착륙 전 환자 승객이 벨트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무장님은 2년 차 승무원이 객실 업무 교본에 나온 행동 요령을 그대로 읊으니 놀란 눈치였다.
“POB(Portable Oxygen Bottle)도 사용할 수 있으니 사용법 숙지해 두세요.”
사무장님은 칭찬만 하고 돌아서기 아쉬웠는지 한 가지를 더 주문하셨다.
곧 승객 탑승이 시작되었고 제일 먼저 환자 승객이 탑승했다. 승객의 외관은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깁스한 양다리보다 핏빛 선명한 붕대가 더 충격이었다. 동승한 의사는 환자 승객의 탑승이 끝나자마자 기내에 사용 가능한 산소 호흡 장비가 있는지 문의했다.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예. 총 11개의 POB가 있습니다. Hi로 산소 공급 시 1분간 4ℓ 흐름으로 최대 77분 공급되고, Lo로 공급 시 1분간 2ℓ로 최대 154분 공급됩니다.”
대답해놓고 보니 스스로 뿌듯했다. 정작 의사는 별 관심 없었지만 말이다. 다행히 환자 승객은 별 탈 없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담당 승무원이었던 내가 6시간 동안 한 일이라곤 빨대를 꽂은 컵을 들고 손을 벌벌 떨며 음료를 서비스한 것뿐이었다.
오히려 심한 부상을 당한 승객은 여유가 넘쳤다. 힘겹게 음료를 넘기던 승객은 “손을 너무 떨면, 음료 못 마셔요. 괜찮아요, 저 안 죽어요.”하고 승무원인 나를 격려했다. 승객의 위로가 아니었다면 이마의 흥건한 핏자국을 보고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Stretcher에 대해, POB에 대해, 신입에 가까웠던 내가 객실안전 교범에 나온 그대로 답변할 수 있었던 건, 객실 사무장님의 덕이 컸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라 스트레처에 대해 사전에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리고 승객 탑승 전 산소 호흡 장비에 대해 언급해 주셨기에 의사 앞에서 당당히 답변할 수 있었다. 극한 상황에서 병아리 승무원을 배려해 주신 환자 승객과 한 발 뒤에서 지원해 주신 사무장님 덕분에 베테랑 승무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 내가 잘해서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니, 이제 보인다.

(사진=김주희 경남도립남해대학 항공운항과 교수)
김주희
현 경남도립남해대학 항공운항과 학과장
현 한국관광연구학회 이사
현 한국문화산업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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